1. 문화를 잃다
연초부터 여름까지는 다이어리에 쓴 이야기 자체가 별로 없었다. 굉장히 암울한 표현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커뮤니티의 붕괴', '언제까지 이렇게 지루하게 살아야 하는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밀려오는 열패감' 등이 있었다.
작년(2020년)에 어떠한 이유로 베프들 간 말싸움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A와 나는 따로 보고 B와 나도 따로 보지만 A와 B는 서로 만나지 않았다.)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만나 자연스럽게 화해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양쪽 모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쳐 나도 우리 그룹이 완전히 깨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관계의 와해가 가장 무서운 점은 함께 만든 문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일요일은 일부러 약속을 비워두고 동네 카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던가, PC방에 가 몇 시간이고 게임을 같이 하던 문화는 이제 없다. 자연스레 게임도 접게 되었다. 시골이 고향인 우리는 자주는 못해도 몇 개월에 한 번 창고 같은 곳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고는 했는데 이 문화도 이제 없다.
주말이면 보통 집에만 박혀있는 나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던 대학 친구 C는 작년(2020년)에 결혼을 했다. 코로나 때문도 있겠지만 자연히 여행을 갈 일이 없게 되었다. 물론 술자리도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다행이다. (쿨한 척..)
곱창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는 친구 D, E가 있다. 취향 중에서도 상위권이 겹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곱창이 좋아 곱창 맛집을 찾아다니고 책이 좋아 한강에서 독서모임을 하던 우리다. 그리고 항상 연애 이야기로 끝을 맺던 우리인데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제외한 둘은 연애를 종결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둘이 한 건 아니다.)
2. 프로젝트 조인
막연하게 흠모하던 시니어 개발자이자 CEO인 분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 6개월 정도 한 것 같은데 거의 1년을 같이 했다고 한다. 매주 화상회의로 진행을 해서 오너 빼고는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 (5인 팀) 2022년에는 꼭 한 번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3. 야망의 표출
6월 28일(월)에는 성공을 해서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하자는 글을 썼다. 야망 같은 게 생긴다고도 썼다. '결과로서 과정을 입증하자.'라는 707부대 슬로건도 인용했다. (후...)
4. 굿너즈 재가동
수년간의 공백을 깨고 굿너즈도 새로운 시작을 했다. 수년 전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개발자 친구가 한 번 숙성시켜(?) 제안을 했고 오랜만에 둘 다 만족하는 아이디어라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외주 개발 짬 덕분에 협업이 수월해졌고 건전한 비판을 하며 기획 퀄리티를 올리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 2022년이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다.
5. 커리어 개발
회사에 사수가 없어 커리어 개발이 난제였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힙한 서비스의 비밀'이라는 커뮤니티에 가입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힙한 서비스를 발굴하는 스터디 위주로 참여하다가 보다 원론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기획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다들 하는 레슨런(업무 성장 일지)도 시작했는데, 이게 신의 한 수였다. 많이 느리긴 했어도 적어도 어떤 성장을 했는지는 알게 되었다.
6. 브런치 재가동
부족한 컨텐츠, 부족한 글쓰기 실력에 비해 구독자가 너무 많아져 1년 6개월 정도 글을 쓰지 못했다. (브런치) 정확히 어떤 계기로 재개하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이 쌓이다 보니 한 꼭지의 글이 완성되었다. 다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고 좋은 경험을 하고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적절한 숙성의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티스토리에 가벼운 글을 연재하고 모르는 이들과 소통을 나눈 것도 힘이 됐다.
7. 국힙원탑
최애 식케이가 달링을 남기고 군대에 떠나 좌절하고 있을 때 카모가 손을 내밀었고 호미들은 멱살을 쥐고 나를 끌고 갔다. 지금 내게 국힙원탑은 호미들이다. 게토 힙합의 비장함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분명 그동안 아무도 보여주지 못한 장르고 나는 이런 장르의 개척이 너무 좋다. (내 필드에서 장르를 개척하는 게 나의 꿈)
8. 마블 스트라이크 포스 OUT
2년 반 넘게 즐겼던 최애 게임을 접었다. 하루 2시간 이상 일상을 침범하는 루틴이 너무 힘들었고 과금 아니면 즐기기 힘들게 만드는 게임사의 운영이 너무 맘에 안 들었다. 가장 즐거웠던 건 동맹원들과의 소통과 협업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23명의 형, 누나들을 이끌고 동맹을 운영한 게 무슨 메타버스 리더십 캠프를 다녀온 느낌이다.. 아무튼 시원섭섭.
9. 스테이폴리오
스테이폴리오는 올해(2021년) 나에게 가장 많은 변화를 준 공간이자, 일이자, 사람들이었다. 리모트로 협업을 하는 동안 불합리한 협업 구조로 인해 자존심 상할 일이 많았고 불만도 많이 쌓여있었다. 지난여름부터 회사 차원의 사정(?)으로 인해 일주일에 한 번 서촌 사무실로 출근을 하게 되었고 그때 나의 목표는 '괜찮은 기획자가 오기 전까지 완벽한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빠지는 것'이었다.
지금 나의 목표는? 서비스 기획자에 머물지 않고 프로덕트 매니저로 직무 확장을 하고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하차하더라도 여기에는 남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고 많은 경험의 순간이 쌓이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1) 2번에 언급한 개발자분이 본격적으로 PL(+ PM..)로 나서면서 협업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협업 과정에서 거의 모든 정보와 소통 내용이 공유되었고 실무자와 기획자, 개발자 모두가 사통팔달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 조금 더 본격적으로, 구체적으로 협업을 진행하면서 동료들의 면면을 알게 되었는데 '내 일만 하고 빠지겠다는' 태도가 없었다. 책임이 많아짐에도 더 나서고, 동료를 위해 고심하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주어진 일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 이전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지금도 많이 배우고 있고 많이 고맙다.
3)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나를 친구로 대해주는 동료들이 있다. 워낙 낯가림이 심하고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나를 처음 보는 대부분은 (나를) 돌, 얼음 정도로 생각하고 어려워한다. 그런데 자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를 궁금해하고, 나의 사소한 것들을 기억해주고, 같이 놀자고 한다. 아직도 속으로 '왜지?'라는 질문을 많이 하지만 알면 알수록 무해한 마음밖에 없더라..
4) 완독하고 싶은 책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느낌이다. 그룹으로 묶어 이야기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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