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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창구

나는 데이터를 모르는 기획자입니다

1. 서비스 기획자

 

나는 개발 에이전시에서 3년 간 서비스 기획자로 일을 해왔다. 나의 역할은 웹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사장님들의 요구사항을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이해할 수 있는 문서로 만드는 일이었다. 개발을 완료하면 나의 임무는 끝이었다. 나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사장님의 욕망을 개발 가능하도록 구체화하는, 일종의 번역 능력이었다.

 

2. 허접한 사장들 그리고 매너리즘

 

그러던 중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는 게 처음 몇 번은 재밌었지만 하면 할수록 지겨워졌다. 대부분의 (예비) 사장님들은 IT와 스타트업의 생존 원리에 무지했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원하는 고객이 있는지도 모르고, 고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아이디어에 심취해 그것을 구현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구현을 하는 나로서는 아이디어에 공감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나부터가 속으로 '이런 걸 왜 만들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덕트가 런칭을 해도 제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3. 인하우스로 옮기다

 

매너리즘에 극에 달했을 때 즈음 인하우스로 이직할 기회가 생겨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처음 1년은 그 동안 해왔던 것처럼 대표님과 각 파트 팀장의 요구사항을 개발 가능한 언어로 정리하고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이끄는 역할을 주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은 요구사항들이 백로그에 쌓이기 시작했고 그중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우리 조직 자체도 데이터 기반으로 이야기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주로 감과 경험에 기반해 설득을 주고받았다.

 

4. 데이터가 필요해

 

하지만 감과 경험은 한계가 있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뿐더러 실제로 맞는 소리인지는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우리 조직에게도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래서 데이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로스해킹, SQL부터 데이터에 대한 기초 이론, GA까지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실력이 늘지 않았다. 이론은 이론대로 머릿속에 맴돌기만 하고 실제 GA를 보거나 데이터를 보면 머리가 하얘져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이론과 실전 사이에 괴리를 좁히지 못한 채 점점 데이터가 싫어지고, 무서워졌다. 데이터를 보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내가 점점 초라해지는 느낌이었다.

 

5. 역행자 자청에게 힌트를 얻다

 

그러던 중 내가 좋아하는 책 <역행자>를 재독 할 기회가 있었고 자청 본인의 블로그를 언급하는 문장을 보다가 그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게 되었다. 상단 공지에 있는 글을 무심코 클릭했고 이 글을 읽다가 힌트를 얻었다.

 

저는 시간이 아까워 1분 안에 답이 안 나오면 바로 답지를 봤습니다. 그러니 5등급을 벗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유형의 문제를 외우기보다는 공식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한 문제에 대해 끝까지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루에 한 문제만 종일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답을 '유레카' 외치듯 발견했을 때 쾌락은 엄청났습니다. 한 문제를 풀고 난 후, 수학 실력은 급상승하게 됩니다. 다른 문제를 풀면 이제 엿하나 먹듯이 쉬운 일이 되었습니다.

 

나도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나에게 필요한 건 데이터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데이터 공부를 하고, 데이터를 봤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주입식 교육의 방식대로 학습을 하고 적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6. 공부를 멈추다

 

생각해 보니 나는 내가 왜 데이터를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책을 덮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참 단순했다. '나에게 데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궁금한 것을 알기 위해서다.' 두렵지만 공부를 잠시 멈추기로 결심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우선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7. 문제풀이 시작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면서 가장 궁금한 것들을 추려봤다. 그중 빠르게 탐구하고 결론을 낼 수 있는 주제를 한 가지 선정했다. 최근 대표님의 요청으로 로그인 화면을 개선했는데 그 효과가 궁금했다. 노션에 <3초 로그인의 효과>라는 프라이빗 문서를 하나 만들고 스스로 질문을 했다.

 

  • 효과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 (대표님이 하라고 해서 했지만) 가설은 무엇이었을까?
  • 개발 완료 후 어떤 효과들이 있었을까?
  • 그 효과들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하면서 문서를 채워나갔다. 모르는 부분도 많았지만 답지를 찾아보진 않았다. (개발자에게 데이터를 뽑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최대한 스스로 답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GA와 SQL이 실질적인 기술로서 생생하게 다가왔다. 데이터에 대한 나의 지식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8. 관점 하나 바꿨을 뿐인데

 

자청이 한 문제를 끝까지 생각해 본 것처럼, 나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 답을 찾아나갔다. 물론 지식의 레벨이 초보적인 수준이라 막히는 게 많았지만 막히는 걸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배우는 게 많았다. 관점 하나 바꿨을 뿐인데 내 삶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어떤 문제든 이러한 방식으로 집중해서 파고들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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