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창구

난독증 환자, 독서에 습관을 들이다

fairyhoon 2024. 3. 4. 00:29

1. 낮은 문해력, 그리고 활자 공포증

 

난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문해력이 부족했고 이 때문에 수능 언어 영역에서 4등급을 맞고 (정시 가나다군 모두 떨어지게 되어) 재수도 했다.

 

재수를 하는 동안에도 언어 영역 점수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불안 증세가 심해졌고 결국 글을 읽는 것 자체에 공포증이 생겼다.

글을 읽어도 눈으로 글자가 스쳐 지나갈 뿐 글의 의미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수학 문제를 푸는 데도 문제가 이해되지 않아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돌이켜보면 난독증에서 비롯된 활자 공포가 있었고 불안 증세가 심할 땐 공황장애까지 있었는데 정신과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버텼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내린 처방은 모든 걸 내려놓고 가장 쉬운 글을 읽는 것이었다.

집 앞 작은 서점에서 '좋은 생각'이라는 조그마한 잡지(?)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주부를 대상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문장이 매우 쉬웠고 조금씩 자신감을 갖고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다음으로는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좋아하던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하나씩 사서 읽기 시작했고 베스트셀러인 <1Q84>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글을 읽는 데 재미가 붙기 시작할 때 즈음 수능날이 찾아왔고 결국 난 '아주 조금 레벨업되어' 언어 3등급으로 재수를 마무리했다.

 

2. 독서 습관을 위한 10년 간의 작심삼일

 

성인이 되어서는 책을 잘 읽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했다.

책도 많이 구매하고 재미가 없어도 완독을 하기 위해 몇 번을 다시 집어 들며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책 읽는 습관을 들이진 못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성인이 그러하듯 '독서 작심삼일'은 10년 넘게 지속되었고 (1년에 10권의 책도 읽지 못함)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는 독서 습관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난독증에 독서 작심삼일자였던 내가 독서 습관을 들일 수 있게 된 요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3. 독서가 공부가 아닌 놀이가 되려면

 

10년 동안 독서 습관을 들이지 못한 가장 큰 장애 요인은 바로 '고전'이었다.

 

재수를 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논술 선생님께 '대학에 가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여쭤보는 메일을 보냈고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답장을 받았다.

정말 좋은 가르침이었지만 문해력과 기초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는 조언이었다.

 

대단한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두께는 두껍고 제목은 짧은 (플라톤의 <국가>, 공자의 <논어>와 같은)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책을 읽는 게 다른 취미와는 다르게 고통스러웠고, 놀이의 영역보다는 공부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책은 놀이의 영역이자 공부의 영역이다.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은 거의 사라졌고 보통 심심할 때 책을 읽는다.

 

책을 공부의 영역이 아닌, 놀이의 영역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1. 완독을 해야 한다는 관념을 버린다.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쉽게 하차하고 쉽게 다른 책을 읽는다.

2. 읽을 만한 책을 많이 구비해 둔다. 어떤 책을 읽다가 지루할 때 바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쌓아둔다.

3. 어렵고 대단한 책을 일부러 읽지 않는다. 철저히 나에게만 포커스를 맞춘다. 내가 관심이 가고 재미를 느끼는 주제에 대해 읽는다. 재밌는 주제라도 어렵다면 읽지 않는다. 내 문해력에 맞는 쉬운 책을 읽는다.

 

4. 독서에 습관을 들이려면

 

독서가 재밌어지는 것과 독서가 습관이 되는 것이 크게 구분되진 않는다.

독서의 재미와 기쁨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책을 더 찾게 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독서 습관이 생기게 된다.

그럼에도 내게 독서 습관을 가속화시켰던 방법들이 있어 공유해 본다.

 

1.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종이책에 더해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적극 활용한다. 나의 경우 휴대폰과 노트북에 ebook 앱을 설치하고 할 게 없을 때 책을 읽는다. 특히 출퇴근길에는 오디오북을 듣는 걸 적극 추천한다. 출퇴근길에는 에너지 레벨이 낮고 주변이 시끄럽기 때문에 독서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눈을 감고 오디오북을 들으면 훨씬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눈으로 읽는 것에 비해 느리고 수동적이어서 머리에 내용이 덜 들어오지만 걷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통 책 한 권에 8시간 ~ 10시간 정도 필요한데 왕복 한 시간 정도 오디오북을 들으면 1~2주에 한 권은 완독할 수 있다.

2. 읽은 책을 기록한다. 내용을 적지 않아도 좋으니 어떤 책을 읽었는지 개인 블로그, 노션, 일기장 등에 기록을 해보자. 책을 몇 권 읽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해 '더 읽고 싶은'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3. 독서를 포함한 즐거운 패턴을 만든다. 예를 들어 애인과 데이트를 할 때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던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한다던지 하면 자연스럽게 책을 더 읽게 된다. 나의 경우 둘 다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과 독서 경험이 맞물려 자연스럽게 패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러분의 독서 생활이 즐겁기를 바란다.